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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의 특이한 활음조 현상

경찰청 철창살은 외철창살이고 검찰청 철창살은 쌍철창살이다.

잰말놀이를 할 때만큼은 재미있지만, 저런 단어를 일상에서 발음하기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당신과 나, 그리고 언중은 당연히 복잡한 발음을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학문’의 ‘ㄱ’을 살려서 발음해 보자. 받침인 불파음 ‘ㄱ’에서 비음 ‘ㅁ’으로 전환하려면 우선

  1. 조음 위치를 연구개(여린입천장)에서 입술로 옮겨야 하고
  2. 비음을 내기 위해 다시 코로 공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이게 귀찮은 한국인들은 ‘ㄱ’과 조음 위치는 같지만 비음인 받침 ‘ㅇ’으로 발음한다. 이런 자음 동화 현상은 다른 언어에서도 발생하며, 영어에서는 대표적으로 복수 어미 ‘-s’는 앞의 음이 유성음/무성음인지에 따라 /s/와 /z/로 발음되는 자음 동화 현상이 있다.

한자어의 활음조 현상

하지만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한자에서도 특이한 현상이 있는데, 자음 동화와 비슷하게 발음이 더 용이하도록 특정 한자어에서 한자음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examples

이 사진에 예시 다섯 개가 있다. 이 다섯 예시 모두 기존 발음에서 더욱 발음하기 쉽도록 발음이 변화하여 표기까지 바뀌어 버린 경우이다.

  • 맹세의 세誓(맹세할 서)는 단어 ‘맹세’에서만 ‘세’로 발음되며,
  • 괴팍의 팍愎(괴퍅할 퍅)은 ‘괴팍’에서만 ‘팍’으로 발음된다. 아무래도 퍅愎이 사용되는 단어 중 ‘괴팍하다’만이 사용 빈도가 높아서 그런 듯하다.
  • 難(어려울 난)은 ‘곤란’과 ‘논란’에서 ‘란’으로 발음되는데, 이 때문에 難의 음이 ‘란’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難의 다른 예시는 찾지 못하였다.)

결론

이런 (이상한) 것들을 알면 언어 생활에서 쏠쏠히 재미를 볼 수 있기에 국어의 특이한 예외 케이스를 배우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친한 친구에게 아는 척을 할 수 있다. (매우 중요)) 우리 모두 (이제 쓸 데 없는) 국어를 공부해서 풍족한 언어 생활을 영위해 보자. (더 많은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래에 관련된 TMI들을 정리해 봤다.)

TMI

  1. 유월(六▽月; June), 시월(十▽月; October)도 이와 관련된 현상이다. 단, six months와 ten months를 뜻할 때는 각각 ‘육 월[유궐]’과 ‘십 월[시붤]’로 쓰고 발음한다.
  2.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한자음대로 읽으면 ‘남무아미타물’이다.
  3. 표준어는 희노애락이 아니라 희로애락이다. 怒(성낼 노)에는 음 ‘로’가 없다.
  4. 한자음대로 읽으면 초파일(初八▽日; 석가탄신일)은 ‘초팔일’, 폐렴(肺炎▽)은 ‘폐염’이다.
  5. 다른 예시로는 오뉴월(五六▽月→오육월), 초승달(初生▽-→초생달), 대창(大腸▽→대장), 궐련(卷▽煙▽→권연), 모란(牡丹▽→모단) 등이 있다. 이 중 궐련은 둘 이상의 한자음이 바뀌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6. 창자는 고유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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