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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이 소설은 출판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영국에 선인세로 수출되기도 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이렇게 잘 팔리는 걸까? 궁금한 나머지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 보았다.

윤정은,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북로망스, 2023.

book

서사(序詞)

소설의 첫 부분에 나오는 서사는 이러하다.

겨울이 없고 불행도 없는 초능력자들의 마을에 살고 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쓰러져 있는 외지인을 발견했다. 두 남녀는 운명인 것처럼 결혼하여 딸을 낳았다. 딸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두 개나. 한 능력은 남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었다. 특별한 딸의 능력에 대해 어떻게 얘기할지 고민하던 부부였지만, 딸이 밤에 내려와 우연히 그 내용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소녀는 불안감에 얼른 자러 가 버리지만, 소녀의 흔들리는 정서 상태는 비극을 일으켰다. 다음 날 아침, 방문 밖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부모님이 사라지는 꿈 따윈 꾸었으면 안 됐는데.

이후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백만 번도 더 산 소녀는 어느 삶의 시작에 황홀한 노을과 푸른 바다가 있는 도시 ‘메리골드’에 오게 된다.

흡인력(吸引力)

정확히 시간을 재 보진 않았지만 3-4시간만에 이 책을 진득하게 완독하는 데 성공하였다. 프롤로그가 끝나는 지점을 제외하면 서로 다른 주제들을 깔끔한 문장으로 엮어 매끄럽게 읽혔다.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끊기는 느낌이 들지 않고, 책의 앞쪽에 등장했던 인물과 사건이 후반에서도 소설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다른 모든 것과 별개로 윤정은 작가의 필력은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인다.

각 장(章)은 서로 다른 인물이 각각의 고민을 주인공에게 털어놓고 주인공은 마음에 끼인 때를 ‘세탁’해 준다. 고민들은 가만히 들어 주고 그 고민들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주인공을 보며 우리는 대리 만족, 혹은 희열감을 느낀다. 작가는 주인공의 ‘세탁소’와 ‘세탁 과정’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붉은 꽃잎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어떻게 세탁을 하는 것인지, 대체 세탁소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등을 활자 뒤에 교묘히 숨겨 두고 독자는 스스로의 상상을 통해 장면을 구체화해 가며 더욱 몰입하게 된다.

주제

주인공은 ‘남의 고민거리 들어 주기’의 천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남의 고민을 듣고 공감해줄 수 있을까? 책의 처음에서 주인공은 오랜 삶과 대조적으로, 혹은 오래 살아와서인지 불안정한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책의 여러 등장 인물의 고민을 들어 주고, 그들과 엮이고, 그들과 일상 생활을 보내면서 정서적 변화를 겪는다. 타인과의 감정 소통으로부터 스스로 성장한 것이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이고, 내 선택이 옳은 것이라 잘될 것이라 믿는다면 결국 그렇게 될 거야. 말하는 대로, 믿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능력이 이미 네 안에 있어. 그냥 의심하지 말고 자신을 믿어봐.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어봐.

마치며

글쎄. 솔직히 말하자면 T인 나로서 그렇게 인상적인 책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책에 취미를 붙여 볼까 해서 광고에 나온 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것인데, 주인공의 신비로운 능력과 고민들 사이 막간에 나오는 일상 생활 부분이 세탁소에서 인물들이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면보다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맨 아래에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공감한 (n년 전이면 아마도 공감했을) 인상적인 구절이 적혀 있다.

이 책은 최근 고민거리가 생긴 F들에게 추천한다. T가 이 책을 읽으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나, 그냥 주인공의 초능력도 있겠다, 그냥 고민을 해결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나, 너무 감성적인 글귀가 너무 많아 오글거린다는 감상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연자는 가끔 궁금했다.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묻지 않으면 대화할 일이 없고 오해도 갈등도 없으니까. 사람과 가까워지며 얽히고설켜봤자 머리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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